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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 투어 ( 오전 )
투어시간 09:00 ~ 12:30
최소인원 1명
비용 ₩38,000원 ($35.00)
코스 호텔 픽업 >  조계사 >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  경복궁 >  국립민속박물관 >  청와대 >  자수정 또는 인삼센타 >  이태원 도착 >  青瓦台
포함사항가이드 차량 입장료
결재현금 및 카드결재
취소예약과 동시 선 결재 , 예약이후 투어일 기준 24시간 이후 취소는 100% 취소료 청구
주의사항
  • 1. 화요일은 경복궁, 민속박물관이 휴관으로 덕수궁으로 대체됩니다.
  • 2. 영하5도 이하 눈 비로 인하여 수문장 교대의식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 3. 반일 단체패키지 투어는 이태원이나 명동에서 내려 드릴 수 있습니다.
  • 4. 픽업은 무료이며 고객님이 투숙하는 호텔에서 픽업이 이루어 집니다 투어종료 후 호텔로 센딩을 원하시는 경우 1인당 20000원의 서비스 요금이 발생합니다. (서울시내 요금기준)

조계사




조계사는 대한불교 직할교구 본사로서 조계종 총무원, 중앙종회 등이 자리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심 사찰이다. 원래 고려 말(14C말엽) 현 수송공원(전 중동고등학교 위치)에 창건된 사찰로서 화재로 소실(연대미상)되었다가 1910년 한용운, 이희광스님 등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중창되었다. 그 뒤 태고사로 개칭되어 1936년 한국 불교의 최고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지금의 조계사로 바뀌었다. 


조계산은 중국 선불교의 육대 조사인 혜능대사 (638-713)께서 주석하셨던 산의 이름이다. 육조 혜능대사는 여러 선사 가운데에서도 특히 존경받는 분으로 그 일생과 가르침은 끊임없이 연구되어 수행의 지표가 되고 있다. 오늘날 조계사는 한국불교와 그 대표 종파인 조계종의 주요 사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조계사 법당은 불교행사의 중심 장소로서 거의 일년 내내 법문이나 염불, 강좌, 또는 제사라든가 그 밖의 의식들이 거행되고 있다. 조계사 법당 뒤에 자리한 건물은 조계종 총무원으로서, 조계종단 전체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인 만큼 다양한 행사와 활동으로 분주하다. 


1층의 불교회관은 전시회나 각종 행사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 건물 안에 자리한 불교신문사에서는 주간으로 불교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법당 앞에는 1930년에 조성된 7층석탑이 있다. 석탑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사리는 스리랑카의 달마바라 스님이 1914년 한국에 모셔온 것이다. 이 석탑 양편에는 석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법당을 바라보면서 왼편으로 종각이 보인다. 


종각에는 큰북과 범종, 운판과 목어가 있어 아침 저녁 예불 때마다 울린다. 이는 비단 사 람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인데 큰북은 네발 달린 짐승을, 범종은 타락하거나 지옥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운판은 하늘의 날짐승을, 목어는 물에 사는 짐승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종각 옆에는 1991년 말에 완공된 제 1문화교육관이 있다. 이 곳 문화교육관에서는 대체로 기도나 법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해온 기존의 사원기능을 보다 확대하여 결혼식이나 세미나, 강연회, 연극공연, 음악제, 전시회와 같은 여러 문화행사가 열린다. 조계사 마당에는 오백 년이 된 백송 한 그루가 있다. 높이 12m, 둘레 1.67m로서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법당 정면에는 사백년된 24m 높이의 회화나무가 있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 2문화교육관에 위치한 조계사 교화사무국은 한국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본사에만 구성되어 있는 불법홍포 전담기구로서 2년제 불교대학을 운영하며 부설로서 초심자를 위한 기초교리 강좌, 경전연구강원,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문화강좌 등의 교육업무를 관장하고 있고 매월 2회 조계 사보(신문)를 발간, 신도 및 일반불자들에게 불교계 소식과 불법을 전파하고 있으며, 특시 사찰관리 및 업무 전산화를 위해 전산실을 운영하고 있다.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조선시대 수문장은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문과 경복궁 등 국왕이 임어(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였습니다. 수문장은 정해진절차에 따라 광화문을 여닫고 근무교대를 통하여 국가의 중심인 국왕과 왕실을 호위함으로써 나라의 안정에 기여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처음 수문장 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조선 예종 1년 (1469년)으로 그 이전까지는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호군(護軍)이 궁궐을 지키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경복궁


한양의 중심이었던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


경복궁은 1395년에 창건한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이다. 북으로 백악산(지금의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진 한양(서울)의 중심이었다. 이후 확장과 중건을 거듭하다가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되고 말았다. 그 후 경복궁은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1867년에 이르러서야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중건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이 정무를 보던 외전과 관청들, 왕족과 궁인들의 생활을 위한 내전과 건물들, 휴식을 위한 정원 시설들을 조성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세운 건청궁 등 크고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들어선 궁궐 복합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권의 상징이었던 경복궁은 일제강점기 때 계획적으로 훼손되었다. 1911년에 경복궁 부지의 소유권은 조선총독부로 넘어갔으며,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전각 몇 채를 제외하고 90% 이상의 전각이 헐렸다.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일제는 경복궁을 본격적으로 파괴했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 버렸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추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했으며, 2010년에는 광화문이 원형복원되었다. 



                   

광화문(光化門)과 궁궐 담장  옛 영화를 짐작할 수 있는 4대문


복궁 바깥을 두른 담장의 길이는 2,404m에 달하고, 평균 높이는 5m, 두께는 2m 정도이다. 담장의 사방에는 4대문을 만들고, 1426년(세종 8)에 건춘문(建春門-동), 광화문(光化門-남), 영추문(迎秋門-서), 신무문(神武門-북)이라 이름 붙였다.이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과 나무-불-쇠-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운데 자리한근 정전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전통적인 오행설에서 유래한 명칭이다.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은 3개의 홍예문이 나 있는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가 높이 앉아 있는 장려한 건물이다. 전면 담장의 두 끝 모퉁이에는 망루인 동십자각(東十字閣)과 서십자각(西十字閣)을 세워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형식을 갖추었다.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동십자각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담장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궐 밖의 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게 되었다.



근정전(勤政殿)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법전(法殿, 正殿)으로, 그 이름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궐 안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 건물로 왕권을 상징하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朝會),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궁궐전각 밑에 놓인 섬돌) 위에 다시 낮은 기단을 만들고 2층 건물을 올렸는데, 안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통층이다. 회랑으로 둘러싸고 평평한 돌을 깐 근정전 앞마당이 바로 조정(朝庭)이다. 남쪽 회랑에 근정문(勤政門)을 두었고 그 바깥에 다시 외행각을 둘러 또하나의 마당을 조성했으며, 외행각 남쪽에는 흥례문(興禮門)을 내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근정문 바깥 영역을 철저히 파괴했으나, 2001년에 흥례문과 외행각, 영제교 등을 복원하여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근정전은 국보 제223호, 근정문 및 행각은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정전(思政殿)


사정전은 왕의 공식적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그 이름에는 왕이 정사에 임할 때 깊이 생각해서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 업무보고와 회의,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사정전 좌우에 있는 만춘전(萬春殿)과 천추전(千秋殿)은 온돌방을 갖추어 사계절 이용이 가능한 보조 편전이다. 조선초기에 이 건물들은 복도로 연결되었으나, 고종 때에는 독립된 건물로 만들어졌다. 만춘전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988년에 복원했다. 사정전 앞의행각은 왕실 재물을 보관하는 내탕고로 이용했다. 사정전은 보물 제175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을 침전(寢殿)이라고 한다. 강녕전은 왕의 침전으로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의 오복에서 가운데에 해당하는 ‘강녕’의 의미를 담아 이름 붙여졌다. 왕은 이곳에서 독서와 휴식 등 일상생활뿐 아니라신하들과 은밀한 정무를 보기도 했다. ‘정(井)’자 모양으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한가운데 방은 왕이 사용하고, 주위의 방에서는 상궁이 숙직을 하였다. 교태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1440년(세종 22)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이곳은 왕비의 침전으로 궐 안의 살림살이를 총지휘하던 곳이다.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


흠경각은 농업 발전을 위해 천체의 운행을 이해하고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자 했던 왕의 고민과 노력이 깃들어 있는 건물이다. 세종은 1438년에 흠경각 건립을 명하고 여기에 옥루기륜(玉漏機輪), 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의 시간 측정기구와 천문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만들어 설치했다. 경복궁 내전 깊숙이 위치해 주로 불사(佛事)를 행하던 함원전도 세종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왕조는 유교 국가인데도 세종 등 여러 왕과 왕비가 불교에 심취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다. 몇 차례의 소실을 거쳐 1888년(고종 28)에 복구되었으나 1917년의 창덕궁 대화재 이후일제가 창덕궁 재건을 위해 뜯어 갔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자경전 ( 慈慶殿 )


헌종(24대)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는 고종(26대)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한 인물이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의 거처를 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 ‘자경’이란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당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년에 재건하여 경복궁 침전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건물이다. 자경전은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경전 일원은 남향인 자경전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복안당(福安堂)을, 동쪽에 청연루(淸讌樓)와 협경당을 연결한 복합 건물군이다. 복안당에는 온돌을 들여 겨울용 침전으로, 청연루에는 누마루를 설치해 여름용 거실로 삼았다. 서쪽 담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들과 갖가지 꽃나무들을 새겨 넣어 최고의 감상용 꽃담을 만들었다. 또한 뒤편 담장에는 대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굴뚝을 설치했다.


동궁(東宮)


왕세자는 새로 떠오르는 해처럼 왕위를 이을 사람이기에 내전의 동쪽에 거처를 배치하고 이를 동궁이라 불렀다. 서쪽의 자선당(資善堂)은 세자와 세자빈이 거처하던 내전이고, 동쪽의 비현각(丕顯閣)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외전에 해당한다.남쪽의 춘방(春坊) 터에는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이, 계방(桂坊) 터에는 의전과 경호를 담당하던 익위사가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부속 관청들이 있었다.조선 초에는 동궁이 궁궐 밖에 있었으며, 궐 안에 동궁전으로 자선당을 짓기 시작한 것은 1427년(세종 9)이다. 몇 차례 소실을 거친 뒤 임진왜란 때 완전 소실되어 1867년에 재건된다. 일제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박람회 개최를 핑계로 1914년에 동궁 일대를 완전히 철거했다. 이 건물들은 1999년에 복원한 것이다.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공간


교태전 북쪽인 아미산 너머에는 흥복전 일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일대는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영역이다. 침전으로 쓰였던 수많은 전각과 복잡한 행각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함화당과 집경당만이 남아 있다. 이나마도 일제가 동궁터에 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사무실로 쓰기 위해 헐지 않아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흥복전은 빈궁전(嬪宮殿)으로서 중궁전인 교태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되 격을 한 단계 낮추어 지었다. 그런데 신정왕후가 이곳 흥복전에서 승하한 것으로 보아 대비전의 용도로도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 당시 여기서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향원정(香遠亭)과 건청궁(乾淸宮)  고종을 위해 지은 궁 안의 궁


함화당과 집경당 북쪽 후원 영역에는 향원지라는 네모난 연못이 조성돼 있고, 그 가운데 향원정이 있다. 경회루가 웅장하고 남성적이라면 향원정은 아늑하고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원래는 북쪽 건청궁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후 지금처럼 남쪽으로 놓았다. 향원정은 세조 때 세운 취로정 터에 건청궁을 지으면서 조성한 것이다. 향원정 북쪽, 경복궁 가장 깊숙한 뒤쪽에 건청궁이 자리하고 있다. 고종은 1873년(고종 10)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 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세웠다.건청궁은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 왕의 처소인 장안당, 서재인 관문각으로 이루어졌으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암살된 비극의 장소이기도 하다. 1909년에 헐린 후 1939년에는 이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섰고, 해방 이후 민속박물관으로 쓰이다가 헐렸다. 2007년에 관문각을 제외한 전각들을 복원했다. 향원정은 보물제17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집옥재(集玉齋)    청풍(淸風)과 조선풍의 조화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이어했다가 1885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서 생활했다. 1891년에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協吉堂)등을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옆 벽을 벽돌로 쌓아 만든 청나라풍 건물로, 밖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중2층으로 되어 있다. 팔우정(八隅亭)은 팔각 누각으로 기둥 상부에 청나라풍의 화려한 낙양각을 달았다. 반면 협길당은 고유한 조선식건물로 온돌방을 두어 휴식 장소로 사용했다. 세 건물은 복도를 통해 연결되며, 각각의 특색을 지니면서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태원전(泰元殿)   왕위 정통성 확보를 위한 고종의 노력


왕자 출신이 아니었던 고종은 부친 흥선대원군과 함께 왕권 승계의 정통성 시비에 대응해야 했다. 그 일환으로 태원전(泰元殿)을 지어 역대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심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1868년(고종 5)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원전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이후에는 명성 황후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殯殿)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문경전(文慶殿)은 위패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건립했다. 주변에 공묵재, 영사재 등 의례용 건물도 들어서 신성한 일곽을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이곳은 청와대가 가깝다는 이유에선지 5・16쿠데타 이후청와대 경호부대가 들어섰으며, 1979년 이른바 ‘경복궁 모의’를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경회루(慶會樓)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축 미학의 절정


경회루는 왕이 신하들과 규모가 큰 연회를 주재하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과 궁궐의 장엄한 경관을 감상하는 왕실 정원으로 꾸몄다. 창건 당시 작은 누각이었던 경회루는 1412년(태종 12)에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도 큰 규모로 새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돌기둥만 남은 것을 1867년에 재건하였다.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이며, 넓이 931㎡의 대규모 목조건물이다. 1층은 48개의 높은 돌기둥들만 세우고 비웠으며, 2층에 마루를 깔아 연회장으로 이용했다. 마룻바닥은 중앙의 3칸중궁(中宮) 부분이 가장 높고, 그 다음 12칸은 한 뼘 정도 낮고, 바깥쪽 20칸은다시 한 뼘쯤 더 낮은데, 중앙으로 갈수록 높은 품계의 관료들이 앉았다.



경회루는 주역(周易)의 원리에 기초하여 지었다는 옛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중앙의 3칸은 천지인(天地人)을, 12칸은 1년 열두 달을, 20칸 바깥에 있는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한다. 높낮이 경계 부분에는 들어열개(위쪽으로 들어 여는문) 창호가 달려 있어 창호를 내리면 각각 닫힌 방이 된다. 추녀마루에는 우리나라건물 가운데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雜像, 지붕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神像을 새겨넣은 장식 기와)이 있다. 재건 당시에 청동으로 만든 두 마리 용을 연못에 넣어 물과 불을 다스리게 했다 하며,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출토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경회루는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정전(修政殿)과 궐내각사(闕內各司)     왕실 업무를 위한 관청


광화문 앞 육조거리에 있던 관청들을 궐외각사라 하고, 궁궐에 들어와 있는 관청들은 궐내각사라고 불렀다.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 궐내각사는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승정원, 홍문관, 예문관, 교서관 등은 왕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정치행정기구였다. 내반원, 상서원, 상의원, 사옹원, 사복시 등은 왕족의 생활과 활동을 보좌하던 실무 관서였다. 흠경각, 보루원, 관상감, 간의대 등은 천문과 시각을 관측하는 과학 부서였고, 도총부, 내병조, 선전관청, 충장위 등은 궁궐 수비와 왕족 경호를 맡은 군사 부서였다. 궐내각사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정전은 세종 때 한글 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으로 쓰였던 곳이다. 1867년 수정전은 왕의 출입이 빈번하여 관청 건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하기도 했다. 궐내각사는 수정전 앞 빈 터에 밀집되어 있었는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완전히 철거되었다. 수정전은 보물 제1760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은 종로구 삼청로 경복궁 내에 위치한 민속 박물관으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양식·풍속 및 관습을 조사·연구하며, 생활 민속 유물을 수집·보존하며 더 나아가 이를 전시함으로써 우리 민속의 전통 문화를 보급·선양하며 국제 문화 속의 한국 문화를 부각시키고자 설립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생활문화, 일상, 일생 등 3개의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연 4회 이상의 기획·특별전을 개최하여 한국의 생활문화의 폭넓은 이해에 이바지하고 있다. 또한 구입, 기증, 기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양한 조사연구 활동을 통해 민속현장의 사진, 필름, 영상자료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속학 전문서적, 다양한 멀티미디어 민속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 축적하여 이용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부터 해외 유명박물관에 한민족문화실 및 해외문화원의 한국실 설치를 지원하여 세계 곳곳에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외국박물관의 전문가를 위한 연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성인교육, 소외계층, 다문화교육을 전개하고 있으며 우리민속한마당 상설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국립어린이박물관 역시 어린이들에게 전통 생활문화를 체험케하여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청와대 사랑채




청와대사랑채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와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종합관광홍보관입니다. 1층은 한국문화관광전시실, 기획전시실, 기념품점, 쉼터(한식홍보관, 카페)로 2층은 청와대관, 행복누리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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