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문점 / 땅굴투어
    • DMZ TOUR
    • 제2땅굴 투어
    • 제3땅굴 투어
  • TOP12패키지
    • TOP1. 판문점 A코스
    • TOP2. 판문점 B + 3땅굴
    • TOP3. 고궁투어(오전)
    • TOP4. 2땅굴 코스
    • TOP5. 한강요트투어(오전)
    • TOP6. 유네스코 투어
    • TOP7. 민속촌 투어
    • TOP8. 수원화성투어
    • TOP9. 남이섬 + 쁘띠프랑스
    • TOP10. 도깨비 빛의 일기 촬영지
    • TOP11. 안동하회마을당일투어
    • TOP12. 공주&부여 당일 투어
  • 서울시티투어
    • 유네스코 투어
    • 한국문화투어
    • 나이트 투어
    • 고궁 투어 ( 오전 )
  • 서울근교투어
    • 수원화성 & 민속촌 투어
    • 수원화성투어
    • 민속촌 투어
    • 강화도 투어
    • 이천 도자기 체험
  • 지방투어
    • 남이섬 + 쁘띠프랑스
    • 도깨비, 빛의 일기 촬영지
    • 안동하회마을당일투어
    • 공주&부여 당일 투어
    • 경주 당일 투어
    • 설악산 당일 투어
  • 스키투어
  • 주문투어
    • 차량및 가이드 안내
  • 한국문화체험
  • 코스보기
  • 예약하기

공주&부여 당일 투어
투어시간 08:00 ~ 18:00
최소인원 3명
비용 ₩120,000원 ($120.00)
코스 호텔 출발 >  공주 국립 박물관 >  무령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  낙화암 >  고란사 >  부소산성 >  호텔 앞 하차
포함사항가이드 차량 입장료
결재현금 및 카드결재
취소예약과 동시 선 결재 , 예약이후 투어일 기준 24시간 이후 취소는 100% 취소료 청구
주의사항
  • 1. 자연재해( 폭우 폭설 )로 인한 경우는 투어가 취소됩니다.



국립공주박물관


충청남도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는 국립공주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국립 박물관으로 공주를 비롯한 충청남도 지역에서 출토된 중요 유물을 보관·전시하고, 유적 발굴 조사와 해외 문화재 조사 등을 통한 학술 연구 활동을 수행하며,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평생 학습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대전·충남지역에서 출토된 국보 19점, 보물 3점 등 문화재 10,000여 점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보관·관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중요 유물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전문연구자들이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고, 더불어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및 연구를 수행하며 그 결과물을 발간한다. 이 밖에 열린문화공간이자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국민들이 수준높은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야외공연장·강당·세미나실 등을 갖추었다.


 


국립공주박물관의 역사




일제강점기 공주 지역의 백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공주고적보존회를 모태로 1940년 공주사적현창회(公州史蹟顯彰會)를 결성하여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에서 박물관 사업을 시작하였다. 1946년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을 거쳐,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발굴 문화재의 보존과 국민들에게 폭 넓은 문화 체험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2004년 5월 공주시 웅진동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에 연접한 옛 지명은 공주읍 송산리 宋山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웅진시대(475~538)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이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널방을 만든 후 천장을 돔(Dome) 형태로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웅진시대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다.


○ 송산리 제1~4호분 宋山里 第1~4號墳 4기의 백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이미 도굴된 상태에서 공주지역의 백제유적 가운데 1927년에 처음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당시에는 5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현재 4기만이 복원되어 있다. 무덤에서는 금과 은, 금동으로 만든 껴묻거리가 일부 출토되어 웅진시대(475~538) 백제문화 복원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 무령왕릉 武寧王陵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501~523)과 왕비의 합장 무덤이다. 1971년 5호분과 6호분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塼築墳]으로,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으며 남북길이 4.2m, 동서너비 2.72m, 높이 2.93m이다.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 놓았던 등감(燈龕)과 창문시설을 설치하였다. 특히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송산리분군에 있는 무덤 중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하여 총 108종 4,600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 송산리 6호분 宋山里 6號墳 1932년에 우연히 발견된 벽돌무덤[塼築墳]으로 널방의 크기는 남북 길이 3.7m, 동서 너비 2.24m이다.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 놓는 등감(燈龕)을 설치하였으며, 네 벽면에 회를 바르고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四神図)를 그렸다. 목관을 올려 놓았던 관받침대가 하나인 것으로 보아 한 사람만 묻혔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을 통해 중국 양나라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송산리 5호분 宋山里 5號墳 1932년에 우연히 발견되어 조사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널방은 남북 길이 3.45m, 동서 너비 3.26m의 정사각형 모양으로 바닥에서 1.3m 높이까지는 벽면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쪽부터는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은 후, 정상부에 판석 1매를 얹어 천장을 돔(Dome) 형태로 둥글게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바닥에는 목관을 올려놓는 관받침대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도굴로 인하여 토기 1점과 약간의 장신구, 그리고 관못만이 남아 있었다.


○ 송산리 방단계단형 적석유구 宋山里 方壇階段形 積石遺構 송산 정상부 가까이에 있는 적석유구이다. 제 1단은 폭이 15m, 제 2단은 11.4m, 제 3단은 6.9m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줄어들어 계단모양을 하고 있다. 목관을 놓은 흔적은 없으며, 대신 그 자리에 10cm 두께로 붉은 색의 점토를 깔았다. 내부에서는 삼족토기를 비롯한 백제토기와 옹관편이 수습되었다. 내부에서 목관과 같은 매장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성시대 마지막 왕인 개로왕의 가묘(假墓)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무덤이 아닌 제사시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낙화암


백제 시대의 전설을 만난다, 낙화암 (백화정)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삼천궁년의 넋을 기리는 사찰, 고란사




낙화암 아래 백마강가 절벽에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이 유명하며, 백마강을 바라보는 주위경관이 비길데 없이 아름답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고란약수와 고란초의 전설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마침 고란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렀다. 약수를 떠오는 사람들이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 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의 임금님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리고 사셨다 한다. 또한,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백제 문화의 보고, 부소산과 부소산성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제5호),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다시 그 주위에 북동쪽의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식(包谷式)산성을 동반한 복합식 산성으로, 성내에는 사자루, 영일루(迎日樓), 반월루(半月樓), 고란사(皐蘭寺),낙화암(落花巖),사방의 문지(門址), 군창지(軍倉址)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所扶里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수도의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나, 이 보다 먼저 500년(동성왕22)경 이미 산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천도할 시기를 전후하여 개축되었고, 605년(무왕 6)경에 대대적인 개수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일부의 성벽은 통일신라시기에 수축되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고을의 규모에 맞도록 축소되어 이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 문화를 만난다, 부소산의 유적지


* 삼충사


부소산성 정문인 사비문을 지나 조금 걸어올라가면 삼충사가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을 지나 사당에 들어서면 백제말 삼충신인 성충, 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마다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리고 세분의 숭고한 구국충절을 기린다.


 


* 영일루


영일루는 부소산성의 맨 동쪽 산봉우리에 세워져 백제왕과 귀족들이 멀리 계룡산의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국정을 계획하고,나라의 태평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했던 영일대에 세운 누각이다.


 


* 군창지


일명 만리창(萬里倉)이라 불렀던 이곳은 1915년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군대 곡식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 수혈병영지


군창지를 조금 지나면 움집이 보인다. 움집은 백제 때 군인들의 움막을 발굴,복원한 것으로 1m 가량 움을 파고,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두른 뒤 초가지붕을 얹은 모습이다. 원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한 곳에 전시실을 지어 구조를 자세히 살필수 있게 하였다.


 


* 사자루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 백화정


낙화암 절벽위에 세워진 육각지붕의 정자가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백화정은 백제멸망 당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숭고한 백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라는 시모임에서 세웠다.


 


* 궁녀사


반월루 광장에서 동북쪽 태자골로 조금 내려가면 궁녀사가 나온다. 이 궁녀사는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던 날,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 여인들의 충절을 추모하고 그 뜻을 후세에 널리 기리고자,1965년에 세웠다. 10월 백제문화제 때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부여관북리백제유적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 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19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일정

아래 코스를 참조해주세요.